Timothy Theodore Duncan
티모시 시어도어 던컨

생년월일 | 1976년 4월 25일 / 버진아일랜드 크리스천스테드 |
출신학교 |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
신장 | 211cm |
체중 | 116kg |
포지션 | 파워포워드 (PF) |
드래프트 | 1997 NBA Draft 1라운드 1순위 |
소속 팀 | 샌안토니오 스퍼스 (1997 - 2016) |
등 번호 | No.21 |
주요 수상내역 | NBA 우승 5회 (1999, 2003, 2005, 2007, 2014) NBA 파이널 MVP 3회 (1999, 2003, 2005) NBA 정규시즌 MVP 2회 (2002, 2003) NBA 올해의 신인상 (1998) All NBA First Team 10회 (1998 - 2000, 2002 - 2004, 2006 - 2008, 2012) All NBA Defensive First Team 8회 (1998 - 2000, 2002 - 2004, 2006, 2007) NBA 올스타 15회 (1998, 2000~2011, 2013, 2015) |
Intro. 소나무 같은 남자, 팀 던컨
파워포워드의 전설 마지막 주자는 역대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 가장 논란이 없는, All-Time No.1 팀 던컨이다. 던컨은 데뷔 시즌부터 은퇴할 때까지 한결같은 선수였다. 그는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매우 잘 수행했는데, 그것은 바로 공격과 수비.
The Fundamental 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탁월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NBA를 호령했다. 단조로운 플레이 스타일에 효율적인 공격을 하는 탓에 늘 같은 기술을 활용했다. 상대 수비가 던컨의 수를 읽기 쉽지 않을까 했지만, 장인 정신으로 쌓아올린 기술의 완성도는 수비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액션 배우 이소룡은 만 가지의 발차기를 연습한 사람은 두렵지 않지만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두렵다고 했는데, 팀 던컨이 딱 맞는 사례다.
심지어 키 211cm, 몸무게 116kg 으로 리그에서 손꼽히는 신체 조건을 가진 탓에 보통의 방법으로 수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공격력, 수비력, 힘, 속도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육각형 빅맨이었다. 그 능력치의 크기가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서 장점이 없는 것처럼 보였을 뿐.
공격력은 디르크 노비츠키, 수비력은 케빈 가넷과 단순비교 가능한 수준으로 공수가 뛰어났다. 이 두 선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팀 던컨 자체가 팀 시스템의 중심이 되는 독보적인 선수였다. 이 강점은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이끄는 명장 그렉 포포비치와 극한의 하모니를 이루게 된다.
작대기 같은 덩크슛, 기본에 충실한 뱅크슛, 포스트업 플레이 등 정통 파워포워드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정석 그 자체인 선수여서 재미가 없다는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여기에 그런 그가 팀의 리더였기에 샌안토니오 팀 전체에도 화려한 플레이 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안정된 플레이를 선호하게 되면서 팀 자체가 재미없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단, 팀 던컨의 플레이 스타일이 재미 없을 뿐이지 어이없는 허당짓과 큰 눈을 꿈뻑 거리며 보이는 멍한 표정,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몸 개그 등 유쾌한 사람이었다. 끔찍한 패션 센스는 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악명 높았는데, 최근 다시 보니 나름 힙한 복장인 듯 하다.
재미를 반납한 만큼 팀 던컨이 이끄는 시기의 샌안토니오는 무시무시했는데,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1회 이상 우승을 거머쥐며 위대한 팀으로 업적을 남긴다.
데뷔 시즌 때부터 드라마틱한 기량 발전이 없었고, 은퇴할 때까지도 급격한 노쇠화를 겪지 않고 한결 같이 샌안토니오의 기둥으로 활약한 던컨은 2016년에 19년 동안의 NBA 커리어를 마치고 은퇴한다.
Chapter 01. 버진 아일랜드의 수영 유망주, 운명이 바뀌다.
팀 던컨은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본래 수영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버진 아일랜드 국가대표로 출전할 만큼 그 실력도 탁월했고,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열심히 훈련하던 그였지만, 만약 농구 선수로 진로를 바꾸지 않았다면, 마이클 펠프스가 올림픽 금메달을 몇 개 덜 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농구 선수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버진 아일랜드를 강타한 허리케인 휴고였다. 허리케인은 버진 아일랜드의 유일한 국제 규격의 수영장을 파괴하며, 던컨의 수영 꿈도 함께 부숴버렸다. 꿈이 허망하게 날아간 소년은 큰 슬픔에 잠겼다.
던컨의 매형은 슬픔을 잊게 하고자 농구를 권했고, 이에 흥미를 느낀 던컨은 농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알론조 모닝이 버진 아일랜드에게 놀러와 농구를 하게 됐는데 이때 던컨과 친구들은 그곳에 껴서 함께 경기를 뛰게 된다. 그곳에서 던컨을 본 웨이크포레스트 대학의 관계자는 그에게 장학금과 입학을 제의하고, 던컨이 이를 받아들이며 운명이 바뀌게 된다.

웨이크포레스트에 입학하게 된 던컨은 데이브 오돔 감독의 가르침을 받게 되고 그의 재능은 꽃 피우게 된다. 2학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던컨은 NCAA의 최고 인사이더로 인정 받았고, 대학 무대를 평정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생 신분으로 미국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 참여하게 되는데,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파란을 일으킨다.
1997년, 던컨이 드래프트 참가를 선언하자 명실공히 팀 던컨 드래프트로 불리게 된다. 지금이야 소위 말하는 탱킹을 방지하기 위해 1순위 지명 확률을 14%로 낮췄지만, 이때 당시 확률은 무려 25%였다. 팀 리빌딩이 절실했던 보스턴 셀틱스는 압도적인 탱킹 레이스를 통해 꼴찌를 달성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지명권도 얻어와서 1순위 지명 확률을 35% 수준으로 확보했다.
많은 언론들은 던컨의 보스턴 행에 초점을 맞췄고, 던컨 또한 셀틱스의 일원이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고려했다.
Chapter 02. 샌안토니오의 새로운 기둥

1997년 드래프트가 시작되자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보스턴 셀틱스를 제치고 1순위 지명권을 얻게 된다. 당시 데이비드 로빈슨이라는 걸출한 센터를 보유했지만, 직전 시즌에 로빈슨이 무릎 부상으로 빠지게 되면서 하위권으로 추락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팀 던컨을 얻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이는 던컨에게도 호재로 작용하게 되는데, 보통 1순위로 지명되는 신인 선수는 보통 하위권 팀에 드래프트 되어 약팀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로빈슨의 존재로 강팀 반열에 있던 샌안토니오로 지명되면서 강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 된 던컨의 루키 시즌은, 대학 시절 미국 대표팀 센터들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위용을 리그에서도 선보이게 된다. 평균 21.1득점-11.9리바운드-2.5블록슛을 기록하며 All NBA First Team 선정, All Defensive Second Team에 선정되는 특별한 업적을 세운다. 올스타 레벨의 성적을 기록한 덕분에 올해의 신인 선수 상은 당연히 던컨의 몫이었다.
신인 시절에 All NBA First Team에 선정된 것은 전설적인 선수인 래리 버드 뿐이었는데, 그 버드 조차도 디펜시브 팀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오직 팀 던컨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기록이었다. 이 기록들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증거가 되었고, 첫 시즌부터 팀 뿐만 아니라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선수임을 증명했다.
Chapter 02-1. 트윈타워 시대의 개막
역사적인 신인 시즌을 보낸 후 맞이한 두 번째 시즌에서 팀 내 에이스였던 데비이드 로빈슨과 함께 '트윈 타워'를 이루며 리그를 호령했고, NBA 파이널에서 패트릭 유잉이 이끄는 뉴욕 닉스를 만나 4승 1패로 무너뜨리고 첫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팀 던컨은 파이널 시리즈에서 평균 27.4득점-14리바운드-2.2블록슛을 기록하며 NBA 파이널 MVP까지 수상하는 겹경사를 누린다. 해당 우승을 기점으로 데이비드 로빈슨은 팀 던컨에게 에이스 지위를 양도하게 되고, 던컨이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슈퍼 루키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팀 내 에이스가 떠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로빈슨은 자신의 노쇠화를 받아들이면서 던컨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샌안토니오가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던컨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훗날 자신이 가진 에이스 자리를 자연스럽게 다른 선수에게 물려주게 된다.
불과 데뷔 두 시즌만에 우승을 거머쥔 던컨에게 영광의 길을 걷는 일만 남았지만, 이어진 1999-00 시즌 정규 리그 막판에 무릎 부상을 당하며 플레이오프에 나오지 못했고, 팀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던컨은 이후 커리어 첫 FA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데,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을 고민하게 된다. 샌안토니오 팀의 대부분은 데이비드 로빈슨을 포함해 모두 노쇠화를 겪고 있었고, 점차 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올랜도 매직은 그랜트 힐을 데려오며 걸출한 에이스와 함께 우승을 노리는 전도유망한 팀이었다.
휴가를 보내고 있던 중에 던컨이 이적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데이비드 로빈슨은 급히 휴가를 내팽개치고 달려와 던컨을 설득했다. 팬들 또한 떠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던컨에게 내비쳤다. 던컨은 고민 끝에 팀에 잔류하게 되고, 이 결정은 샌안토니오 스퍼스 왕조의 기틀이 된다.
팀과 재계약을 한 후, 2000-01 시즌을 맞이한 던컨은 여전한 기량을 과시하며 22.2득점-12.2리바운드를 기록했고, 팀과 함께 가볍게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르게 되지만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이 이끄는 '밀레니엄' LA레이커스를 만나 우승 도전에 실패한다.
2001-02 시즌에서 25.5득점-12.7리바운드-2.5블록슛을 기록하면서 첫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게 된다. 개인 기량이 최고조를 찍으며 자신감에 붙은 던컨은 호기롭게 플레이오프에 나서지만, 또 다시 코비와 샤크가 이끄는 레이커스를 만나 2연속 탈락이라는 굴욕을 겪게 된다.

2002-03 시즌도 한결같은 기량을 유지하며 2연속 정규리그 MVP를 차지하게 되고, 또 다시 우승을 향한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1라운드에서 피닉스 선즈를 만나 4승 2패로 물리쳤고, 2라운드에 진출한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 만난 상대는 '또' 코비와 샤크가 이끄는 LA레이커스였다.
하지만 같은 상대에게 세 번이나 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던컨은 28득점-11.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시리즈 4승 2패로 기어코 코비-샤크 듀오를 무너뜨리고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훗날 던컨과 함께 샌안토니오 왕조의 BIG 3로 불리는 토니 파커와 마누 지노빌리도 이 때부터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레이커스를 제압하며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에 오른 던컨은 막힌 혈이 뚫린 것처럼 신들린 활약을 펼치면서 당시 디르크 노비츠키가 이끌던 댈러스 매버릭스를 4승 2패로 패퇴시킨 후 커리어 두 번째 파이널 무대에 오르게 된다.

파이널에서 만난 뉴저지 네츠 제이슨 키드와 케년 마틴을 필두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4-0으로 손쉽게 제압하면서 분위기가 오를 때로 올랐다. 하지만 던컨은 1차전에서 32득점 2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뉴저지의 기세를 꺾어버렸고, 이후 파이널 시리즈 동안 24.2득점-17리바운드-5.3블록슛이라는 괴물같은 활약을 펼치며 4승 2패로 뉴저지를 물리치고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쥔다.

특히 2002-03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던 정신적 지주 데이비드 로빈슨에게 은퇴 선물로 우승 반지를 선물하는 낭만을 보여주게 되고, 로빈슨의 은퇴와 별개로 던컨은 당해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팀 내 평균 출장시간,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블록슛 모두 1위를 기록하며 완벽한 더 맨 우승을 달성한다.
Chapter 03. 샌안토니오 왕조의 시작

데이비드 로빈슨의 은퇴로 완전한 팀의 리더로 자리잡은 던컨은 두 번째 우승 때 감초같은 활약을 펼쳤던 유로피언 듀오, 토니 파커 - 마누 지노빌리와 함께 샌안토니오 버전 BIG 3 시대를 열게 된다. 전성기를 맞이한 던컨과 달리 아직 파커와 지노빌리는 영글지 못했던 탓에, 2003-2004시즌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LA레이커스를 만나 패배하며 2연속 우승에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를 경험으로 성장한 파커와 지노빌리는 2005년부터 실력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던컨을 중심으로 한 샌안토니오 트리오는 2004-05 시즌 정규리그에서 59승 23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나서게 되고, 1라운드에서 카멜로 앤써니가 이끄는 덴버, 레이 앨런이 버틴 시애틀, 스티브 내쉬-아마레 스타더마이어의 피닉스까지 차례로 제압하며 파이널 무대에 오른다.

2005년도 파이널 상대는 직전 시즌을 우승한 천시 빌럽스-벤 월러스가 이끄는 '배드보이즈 2기'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였다. 헌데 리그에서 극한의 수비팀으로 손꼽히는 두 팀의 맞대결은 NBA 자체에는 엄청난 악재였다. 당연히 두 팀의 파이널은 NBA 역대 최저 수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그러나 훗날 이 두팀의 대결을 재조명하며 명승부였던 파이널 중 하나로 재평가받게 된다.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두 팀의 파이널은 7차전까지 접전이었다. 던컨의 보드 장악력과 지노빌리의 득점을 앞세워 2승을 먼저 따내지만, 리차드 해밀턴-벤 월러스-천시 빌럽스가 번갈아가며 활약한 디트로이트에게 3,4차전을 내줬다.
이어진 5차전에서 디트로이트의 천시 빌럽스가 34득점을 터뜨리며 맹활약을 펼쳤지만, 던컨이 16득점-16리바운드로 맞불을 놓으며 응수했다. 그럼에도 연장까지 진행됐고, 연장전에서만 5점을 넣은 로버트 오리의 활약에 힘입어 1점 차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가져간다.
승리까지 단 한 걸음 남았지만, 6차전에서 천시 빌럽스-리차드 해밀턴-라쉬드 월러스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샌안토니오의 림을 폭격했고, 던컨이 21득점-15리바운드로 기록하며 고군분투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7차전 단판 승부까지 오게 된다. 던컨은 마지막 경기에서도 25득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중심을 잡아줬고, 6차전 디트로이트 승리의 수훈이었던 천시 빌럽스와 리차드 해밀턴의 득점을 20득점 아래로 틀어막으며 샌안토니오의 세 번째 우승을 기여하게 된다.

시리즈 내내 팀의 중심이자 시스템으로 작동했던 던컨이 파이널 MVP를 수상한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로빈슨 은퇴 이후 첫 우승과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와 함께 이뤄낸 우승이기에 던컨에게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디트로이트의 '빅 벤' 벤 월러스는 경기 후 "던컨은 그의 팀을 짊어지고 챔피언을 따냈다. 이것은 위대한 선수들만이 가능한 일" 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빈스 카터,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등 빠른 운동 능력을 기반으로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득점을 퍼붓던 스윙맨들이 인기가 있었지만 던컨은 본인만의 스타일로 팀을 세 번째 챔피언에 올려두었다.
2005-06 시즌, 세 번째 2회 연속 우승을 도전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으나 이때부터 던컨은 족저근막염을 달고 경기에 나섰고, 이로 인해 운동 능력이 빠르게 감소하며 노쇠화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18.6득점-11리바운드-2블록슛을 기록하며 여전한 기량을 선보였다. 다만 족저근막염의 여파로 플레이오프에서 디르크 노비츠키가 이끄는 댈러스를 만나 2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족저근막염 부상 이후로 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한 던컨은 2006-07 시즌부터 팀의 에이스 자리를 토니 파커에게 물려주게 되고, 기본기가 워낙 뛰어났던 터라 기복없이 자신의 몫은 꾸준히 하며 팀의 기둥으로 활약하며 팀을 플레이오프 무대로 올려놓는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카멜로 앤써니-앨런 아이버슨 듀오가 이끄는 덴버를 만나 4승 1패로 가볍게 제압했고, 2연속 정규 시즌 MVP 스티브 내쉬가 이끄는 피닉스 선즈를 2라운드에서, 데론 윌리엄스-카를로스 부저의 유타 재즈를 서부 결승전에서 패퇴시키며 또 한 번 NBA 파이널 무대에 오른다.
네 번째 NBA 파이널에 진출한 던컨의 상대는 떠오르는 신성,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였다. 하지만 토니 파커-마누 지노빌리와 함께 팀 농구의 정수를 보이기 시작한 던컨은 파이널 평균 18.3득점-11.5리바운드를 올리며 팀을 진두지휘했고, 새로운 에이스 토니 파커의 활약에 힘입어 르브론의 클리블랜드를 4-0으로 대파하며 네 번째 우승을 거머쥔다.

해당 시리즈는 역대 파이널 중 한팀이 일방적으로 가장 손쉽게 승리를 따낸 시리즈로 회자된다. 팀 던컨은 무기력한 4:0 패배를 당하며 망연자실해있던 르브론 제임스에게 다가가 '앞으로 너의 시대가 올 거야' 라는 진심어린 응원을 건넨다. 그러나 이후 르브론 제임스를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시키며 던컨의 NBA 커리어 중 가장 악랄한 트래시 토크라는 농담으로 쓰이고 있다.
네 번째 우승 이후부터는 토니 파커-마누 지노빌리를 위시한 핵심 선수들의 약진과 맷 보너-조지 힐 등 신예들의 성장으로 출전 시간과 개인 기록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보통 에이스 선수들은 본인의 기록이 떨어지는 것에 예민한 편인데, 던컨은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다만 플레이오프 무대에 가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던 만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에너지 레벨을 스스로 조정했고 팀의 감독이었던 그렉 포포비치도 그를 철저하게 관리해주었다. 심지어 결장 사유에 'OLD (늙음)' 이라고 작성할 정도로 던컨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데 진심이었다.
NBA 커리어가 진행됨에 따라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종종 방전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전과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30대 중반에 급격하게 퍼포먼스가 떨어졌던 선수들에 비하면 비교적 나은 편이었다.
2012-13 시즌에 들어서부터는 체중 감량을 통해 몸이 받는 부담을 줄였고, 지난 몇 년과 비교하면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던컨의 회춘과 함께 팀도 승승장구하며 NBA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상대는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크리스 보쉬가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마이애미 히트였다.
직전 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챔피언으로 던컨 앞에 나타난 르브론 제임스는 2007년도 애송이 시절과 달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던컨은 파이널 시리즈 평균 18.9득점-12.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7차전까지 이어지는 혈투를 벌였다.
7차전에서 던컨은 자신의 매치업 상대였던 크리스 보쉬를 완전히 압도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4쿼터 클러치 상황에서 골밑 레이업과 팁-인 모두 실패하고 만다. 이때 어떤 트래시 토크나 도발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큰 감정 기복을 보이지 않던 던컨이 손바닥으로 코트 바닥을 강하게 내려치며 울분을 토한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마이애미에게 우승 반지를 내줘야했고, 이것이 던컨의 커리어 최초의 파이널 준우승이 된다. 르브론 제임스에게 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던 샌안토니오의 빅맨은 자신이 그 말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새로 시작된 2013-14 시즌, 던컨은 리그 평균 15.1득점 9.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다시 한 번 팀과 함께 플레이오프 무대에 도전한다. 1라운드에서 디르크 노비츠키-빈스 카터-몬타 엘리스 삼각 편대가 이끄는 댈러스 매버릭스를 상대로 팀 던컨-토니 파커-마누 지노빌리 삼인방이 고르게 활약하며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라운드로 진출하게 된다.
이 시리즈 이후 댈러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은 던컨에게 한 번 더 우승을 하고 커리어에 만족을 느낀 뒤 은퇴하길 바란다며 농담 섞인 인터뷰를 하게 된다. 또한 팀의 에이스인 디르크 노비츠키의 앞을 매번 가로막았던 샌안토니오의 기둥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2라운드 상대는 라마커스 알드리지-데미안 릴라드를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키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다. 그러나 던컨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젊은 팀이었던 포틀랜드를 4승 1패로 제압하며 서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한다. 이때부터 샌안토니오의 신예, 카와이 레너드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러셀 웨스트브룩-케빈 듀란트 듀오의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 파이널을 향한 던컨의 열망과 샌안토니오의 주전 5인방과 식스맨까지 평균 두자릿 수 득점을 기록하는 벌떼 농구로 오클라호마를 4승 2패로 제압한 후 파이널 무대에 다시 올라선다.
상대는 지난 시즌 던컨에게 준우승을 안겨주었던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한 디펜딩 챔피언, 마이애미 히트였다. 2년 연속으로 파이널 무대에서 맞붙게 된 두 팀은 각자의 목표가 명확했다. 마이애미는 왕조의 척도인 3회 연속 우승, 일명 '쓰리핏'을 통해 왕조를 건설하려 했고, 샌안토니오는 다시 한 번 우승을 통해 샌안토니오의 시대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직전 파이널에서 결정적인 슛들을 모두 놓치며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던컨은 1차전부터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쳤다. 21득점-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승을 먼저 챙겼다. 이어진 2차 전에서 18득점-1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보드 장악력을 과시했지만, 35득점을 기록한 르브론 제임스에게 패배하고 만다.
개인 기량이 정점에 오른 르브론 제임스를 막지 못한다면 샌안토니오의 우승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샌안토니오에서 깜짝 스타가 등장하는데, 바로 카와이 레너드였다. 3차전에서 르브론 제임스의 득점 행진에 맞불을 놓으며 밀리지 않는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자 던컨은 데이비드 로빈슨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궂은 일을 자처하며 22살의 애송이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러한 팀 리더의 헌신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고, 철저한 팀플레이로 마이애미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르브론 제임스는 4차전 28득점, 5차전 31득점으로 양팀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완강히 저항했으나, 카와이 레너드라는 새로운 스타의 출현으로 패퇴하게 된다.
자신의 기량이 정점일 때 로빈슨에게 우승 반지를 안겼던 던컨은, 새파란 후배 카와이 레너드의 활약에 힘 입어 5번째 우승 반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던컨에서 파커로, 파커에서 레너드로 이어진 자연스럽게 양도된 에이스 계보는 로빈슨으로부터 이어져온 샌안토니오만의 특별함은 많은 팬들의 부러움을 사게 된다.
그리고 샌안토니오는 1990-2000-2010년대에 걸쳐 우승을 기록하며 자신들의 기나긴 왕조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Outro. 시대를 초월한 위너, 팀 던컨

다섯 번째 우승을 통해 1990년대-2000년대-2010년대 모두 우승을 차지한 팀 던컨은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해 시대의 지배자가 되었던 시카고 불스의 '황제' 마이클 조던, LA 레이커스의 '다이나믹 듀오' 코비 브라이언트-샤킬 오닐과는 궤를 달리하는 시대의 지배자로 남게 됐다.
개인적인 마일스톤도 점차 쌓여감에 따라 위대한 기록들을 달성하게 되는데, 2015년 11월 3일에는 존 스탁턴을 제치고 통산 954승을 거두며 한 팀에서 뛴 역대 선수 중 개인 최다승을 달성한 선수가 된다. 이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만 1001승을 거두며 영혼의 단짝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감독-선수 듀오로 NBA 역대 1위에 오른다. 그리고 정규 리그에서 오직 던컨만이 유일하게 71.9%라는 압도적인 누적 승률을 기록했다.
2016년 7월 11일, 늦은 저녁 11시에 은퇴를 발표하며 팀 던컨답게 19년 간 이어져온 NBA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흘러 2020년, 팀 던컨은 영원한 맞수였던 케빈 가넷,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NBA에서의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득세하던 스윙맨들에게 가려져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할 것들을 해온 던컨은 현재 이견 없는 파워포워드 올타임 넘버원으로 뽑히고 있다. 던컨의 플레이 스타일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위대하고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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