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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basketball/풋내기슛

[파워포워드의 전설] 댈러스의 별, '독일병정' 디르크 노비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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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k Werner Nowitzki

디르크 베르너 노비츠키

생년월일 1978년 6월 19일 / 독일 뷔르츠부르크
출신학교 -
신장 213cm
체중 111kg
포지션 파워포워드 (PF)
드래프트 1998 NBA Draft 1라운드 9순위
소속 팀 DJK 뷔르츠부르크 (1994 - 1998)
댈러스 매버릭스 (1998 - 2019)
등 번호 No.41
주요 수상내역 NBA 우승 (2011)
NBA 파이널 MVP (2011)
NBA 정규시즌 MVP (2007)
올NBA 퍼스트 팀 4회 (2005-2007, 2009)
NBA 올스타 14회 (2002-2012, 2014-2015, 2019)
올NBA 세컨드 팀 5회 (2002-2003, 2008, 2010-2011)
올NBA 서드 팀 3회 (2001, 2004, 2012)
NBA 올해의 팀메이트상 (2017)
NBA 3점슛 콘테스트 우승 (2006)
FIBA 올해의 유럽 선수 2회 (2005,2011)
FIBA 농구 월드컵 MVP (2002)
FIBA 유로바스켓 MVP (2005)

 

Intro. NBA를 수 놓은 독일병정, 디르크 노비츠키

파워포워드의 전설, 두 번째 주자는 영원한 댈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디르크 노비츠키다. 노비츠키가 활약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는 빅맨은 골밑에서 몸싸움을 하며 리바운드를 따내거나 가드가 찔러주는 패스를 받아 골밑 득점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213cm의 장신임에도 기존 파워포워드의 플레이 스타일과 전혀 달랐다.

 

다양한 공격 기술과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 능력을 선보이며 상대 팀에 폭격을 가했고, 신장 대비 기동성과 민첩성도 빨랐다. 농구계에선 큰 키에 민첩한 몸놀림, 뛰어난 기술과 정확한 슈팅 능력을 겸비한 선수를 환상의 동물인 유니콘에 비유했는데, 노비츠키는 이런 유니콘 빅맨들의 시초 격이라 볼 수 있다.

 

현대 농구에서 금기 시되는 3점 라인 바로 안쪽에서 던지는 롱투 미드레인지는 노비츠키의 전매특허였으며, 비효율적인 공격이라는 평가를 무색하게 할 만큼 높은 야투율로 리그를 호령했다. 슛 성공률도 좋아 막기가 여간 힘든게 아닌데, 여기에 키도 크고 윙스팬도 길어서 슛을 쏘는 타점 조차 높았으니 상대 수비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을 터.

 

심지어 The Fadeaway 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상대와 거리를 벌리며 던지는 페이더웨이가 그의 주 무기였다. 보통 페이더웨이는 고난도 슈팅인 만큼 다음엔 안들어갈 수도 있겠지 싶지만, 노비츠키의 페이더웨이는 약 50% 성공률로 적중했다. 미드레인지 점퍼 평균 성공률이 40~45%인 점을 감안하면 체감 상 던지는 족족 들어간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비츠키의 페이더웨이는 또 다른 강점이 있었는데 바로 원 레그 페이더웨이 라는 점이다. 한 발을 내밀고 치고 올라가기 때문에 수비가 블록 타이밍을 잡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런 아크로바틱한 슈팅은 성공률이 떨어져야 하는데 노비츠키는 완벽한 밸런스로 높은 성공률로 쏴댔다. 한때 '사기츠키', '노기꾼' 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은 이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수비수이자 파워포워드 라이벌인 케빈 가넷 조차도 저걸 어떻게 막냐고 혀를 내둘렀다.

 

그에 반면 노비츠키의 수비는 형편 없었는데, 영문 이름인 Dirk Nowitzki 에서 수비Defense가 없다고 irk Nowitzki라는 웃지 못할 이명도 얻게 된다. 다만 역사적인 공격 능력에 비해 수비가 약하다였을 뿐이지, 그렇다고 수비에서 완전히 마이너스는 아니었다. 개인 수비 능력은 떨어졌지만 팀 차원 수비에서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어쨌든 사기적인 공격 옵션을 앞세운 노비츠키는 2011년, 댈러스 매버릭스에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안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21시즌이라는 긴 시간동안 댈러스 프랜차이즈 스타로 헌신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보였고, 데뷔했던 팀에서 은퇴까지 하는 원클럽맨의 낭만을 팬들에게 선사한다.


Chapter 01. 독일에서 무기를 갈고 닦은 소년

독일병정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디르크 노비츠키는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 테니스와 핸드볼을 주로 했었는데, 키가 부쩍 자라게 되면서 농구로 종목을 바꾸었다. 일찌감치 재능을 보인 노비츠키는 그의 정신적 스승이 되는 홀거 게슈빈드너를 만나게 된다. 독일 농구 대표팀까지 지낸 게슈빈드너는 노비츠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의 개인코치를 자처하게 된다.

 

홀거 게슈빈드너와 디르크 노비츠키

 

이 시기 노비츠키는 게슈빈드너로부터 많은 것을 가르침 받는데, 기존 빅맨과 달리 드리블과 슈팅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기계적인 슛 폼이 아닌 밸런스를 중시하는 철학을 가르쳤고, 이로 인해 일명 학다리슛 이라고 불리게 되는 원 레그 페이더웨이가 탄생하게 된다. 게슈빈드너는 농구 뿐만 아니라 외적인 부분도 섬세하게 터치했는데, 노비츠키에게 음악과 예술을 공부하라고 권유했다. 리듬 감각과 창의력이 농구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농구를 넘어 선 사제 관계는 노비츠키가 독일 리그 뿐만 아니라 NBA 진출할 때도, 2011년 우승 이후에도 함께 훈련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이어졌다. 게슈빈드너가 없었다면 노비츠키의 커리어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디르크 노비츠키는 게슈빈드너의 걸작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였다.

 

DJK 뷔르츠부르크 시절 노비츠키

 

두각을 드러내던 노비츠키는 16세의 나이로 DJK 뷔르츠부르크 농구 팀에 입단하게 된다. 당시 독일 2부 리그에 속해있던 팀이었는데, 그곳에서 프로 레벨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입단 후 두 시즌만에 확고한 주전 에이스 자리를 꿰찬 노비츠키는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 해에 독일 올해의 농구선수로 선정된다.

 

뛰어난 실력을 보인 노비츠키에게 유럽 최고 수준의 농구 명문인 바르셀로나에서 영입을 제안했으나, 노비츠키는 이를 거절한다. 이후 나이키가 주최하는 대회에 참여해 찰스 바클리, 스카티 피펜을 압도했고, 유망주들을 모아 대회를 치르는 Nike Hoop Summit 참가하여 미국의 유망주들을 압도하며 NBA 스카우터들의 눈길을 사로잡게 된다.

 

세계 레벨 무대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확인한 노비츠키는 1998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를 신청한다.


Chapter 02. 댈러스 매버릭스, 성운 속에서 전설이 될 별을 데려오다.

1998년 NBA Draft

 

1998 NBA Draft 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는 6순위로 로버트 트레일러를 지명했고, 밀워키 벅스가 9순위로 디르크 노비츠키를 지명했다. 그리고 댈러스가 로버트 트레일러를 밀워키로 보내고, 디르크 노비츠키를 데려오는 운명적인 트레이드를 성사 시킨다.

 

노비츠키의 데뷔 시즌인 1998-99 시즌은 하필 NBA가 파업을 하며 시즌 개최가 불투명해졌고, 이 때문에 잠시동안 DJK 뷔르츠부르크에서 뛸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NBA와 선수 노조가 극적으로 타협하며 단축 시즌이 개막되었고, 노비츠키도 무사히 데뷔할 수 있게 된다.

 

나름 프로 무대에서 시간을 보냈던 노비츠키였지만 NBA 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그의 강점인 슈팅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약점인 수비만 더욱 부각되며 팬들에게 조롱을 당했다. 이때 노비츠키는 매우 힘들어했는데, 게슈빈드너 코치가 계속 훈련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독려하며 그의 멘탈을 잡아주었다.

 

1999-00 시즌, 2년 차 시즌에는 대부분 신인 선수들이 겪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날려버리고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이때 팀은 큰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마크 큐반이 구단주가 된 것이었다. 익히 소문난 농구광인 큐반은 팀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노비츠키는 스티브 내쉬-마이클 핀리와 함께 팀을 이끌며 평균 21.8득점-9.2리바운드로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는다.

 

시간이 흐를 수록 팀의 포인트 가드, 스티브 내쉬와 호흡이 절정에 달했고 이에 힘입어 2002-03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와 7차전, 2라운드에서 새크라멘토와 7차전 끝에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2승 4패로 무너지고 만다. 노비츠키는 시리즈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하며 아웃 당하는 불운까지 겪는다.

 

하지만 불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는데 2004-05 시즌 시작 전, 스티브 내쉬가 피닉스 선즈로 이적한 것. 결국 주전 포인트 가드가 빠진 댈러스는 노비츠키에게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게 되고, 이에 화답하듯 평균 26.1득점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시즌을 보낸다. 그러나 당해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내쉬가 이끄는 피닉스를 만나 패배하며 트레이드 후 첫 맞대결에서 패배하게 된다. 이 때 노비츠키는 자신의 손으로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생긴다.


Chapter 03. NBA 첫 파이널 진출, 그리고 MVP

노비츠키의 새로운 멤버

 

2005-06 시즌, 우승을 위해 마이클 핀리도 샌안토니오로 이적했지만 절치부심한 노비츠키는 제이슨 테리, 제리 스택하우스 등 새 멤버들과 함께 정규 리그를 호령하기 시작했고, 60승 22패를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르게 된다. 1라운드에서 만난 멤피스를 꺽고 2라운드에서 또 다시 샌안토니오를 만나게 된다.

 

이 시리즈는 디르크 노비츠키와 팀 던컨의 역사적인 쇼다운이 펼쳐졌던 시리즈였다. 댈러스는 매번 샌안토니오를 만나 패배했던 터라 이를 갈고 있던 만큼 손쉽게 3승을 먼저 따내며 시리즈를 마무리하나 싶었지만, 샌안토니오의 저력에 의해 3:3 동률이 된다. 그렇게 펼쳐진 7차전,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댈러스는 샌안토니오를 무너뜨리고 스티브 내쉬가 이끄는 피닉스와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재회하게 된다.

 

이전 플레이오프 때 내쉬가 이끄는 피닉스에 무너졌던 노비츠키는 두 번의 패배를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내쉬와 노비츠키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시리즈 2:2 동률을 이루게 된다. 승부의 분수령이 된 5차전에서 노비츠키가 50득점을 터뜨리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치며 분위기를 가져왔고, 기세를 몰아 6차전도 잡아내며 생애 첫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다.

 

결승 상대는 '공룡센터' 샤킬 오닐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한 마이애미 히트였다. 그러나 기세가 오른 댈러스는 1차전과 2차전을 내리 잡아내며 2:0으로 시리즈를 앞서나가면서 우승에 근접하는 듯 했지만, 'The Flash' 드웨인 웨이드의 반격이 시작되며 시리즈는 2:2 동률이 된다. 마지막 5,6차전은 역대급 편파 판정으로 인해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하게 된다.

 

드웨인 웨이드가 자유투를 23개를 얻는 동안, 노비츠키는 단 1개의 자유투만을 얻으면서 파울콜 논란이 있었다. 소위 스치기만 해도 파울이 선언되니, 댈러스 매버릭스에겐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었던 것. 댈러스와 노비츠키의 첫 파이널은 그렇게 아쉬움으로 얼룩진 채 막을 내렸다.

 

2007 NBA MVP

 

첫 파이널에서 비록 준우승을 거뒀지만 다음 2006-07 시즌에서는 댈러스는 팀 창단 이래로 최고의 성적을 거뒀고, 노비츠키 역시 본인의 첫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게 된다. 특히 유럽 선수 역사상 첫 번째 MVP라는 겹경사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1번 시드를 거머쥐며 우승을 도전했던 댈러스가 8번 시드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2승 4패로 충격적인 업셋을 당한다. 이후 업셋의 후유증 때문인지, 2007-08 시즌은 16승이나 하락한 저조한 성적으로 정규 리그를 마치고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 크리스폴이 이끄는 뉴올리언스 호네츠의 광풍에 떠밀려 두 시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그 이후로도 정규 리그에서는 건재했으나, 플레이오프 무대에서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조차 진출하지 못하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


Chapter 04. 댈러스에 첫 우승을 안기다.

2010-11 댈러스 매버릭스

 

대망의 2010-11 시즌을 앞두고, 댈러스 매버릭스는 트레이드를 통해 타이슨 챈들러를 데려오며 골밑을 강화한다. 이제 나이가 들어 노쇠화가 시작된 노비츠키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챈들러의 합류로 날개를 단 노비츠키는 제이슨 키드-숀 매리언, 제이슨 테리 등과 함께 팀워크를 중시하며 정규 리그를 치렀고, 서부 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1라운드에서 브래든 로이가 이끄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만나 4승 2패로 제압했고, 2라운드에서 직전 시즌 우승을 거머쥔 '디펜딩 챔피언' LA 레이커스를 만나게 된다. 이번에도 댈러스의 우승은 물 건너가나 싶었지만, 레이커스를 4승 0패로 스윕 해버리면서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에 진출한다.

 

젊은 패기,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젊은 팀, 오클라호마 시티 선더였다. 러셀 웨스트브룩과 케빈 듀란트가 이끌고 있었고 첫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 오르면서 분위기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겪은 노비츠키에게 젊은 선수들의 패기는 소용 없었다. 가공할만한 공격 능력을 앞세워 오클라호마의 패기를 무력화시켰고, 4승 1패를 거두며 두 번째 NBA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NBA 파이널에서 만난 상대는 2006년, 노비츠키를 패퇴시켰던 마이애미 히트였다. 당시 역사적인 활약을 펼쳤던 드웨인 웨이드가 건재했고, 여기에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와 리그에서 손꼽히는 파워포워드 크리스 보쉬가 합류하여 BIG 3가 버티고 있었다.

 

마이애미 히트 BIG 3

 

보스턴 BIG 3와 달리 20대 중후반의 최전성기를 구사하고 있던 선수들이 뭉친 마이애미 BIG 3는 그야말로 리그를 초토화 시켰고, 역사의 시작점으로 2010-2011 시즌 우승 반지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당시 여론은 약 90%가 마이애미의 우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석연치 않았던 판정으로 인해 이를 갈고 있던 댈러스는 복수의 기회를 잡는다.

 

그렇게 시작된 1차전에서 노비츠키는 27득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으나, 드웨인 웨이드와 르브론 제임스 원투펀치 활약에 힘입은 마이애미가 한 수 위였다. 치열한 접전 끝에 92-84로 1차전을 내주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노비츠키는 이때 손가락에 부상을 입게 되면서 분위기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이어서 펼쳐진 2차전에서 드웨인 웨이드가 36득점을 몰아쳤지만  노비츠키는 손가락 부상에도 불구하고 24득점-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팀은 95-93으로 2점 차로 간신히 승리를 따내며 시리즈를 1:1 동률로 만들어낸다. 특히 경기 막판에 스코어링 런 22-5를 달리며 역전승을 따낸 만큼 분위기는 다시 댈러스로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마이애미 BIG 3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드웨인 웨이드가 29득점, 르브론 제임스가 17득점으로 지원 사격하며 댈러스를 무너뜨렸고, 댈러스는 노비츠키의 31득점-11리바운드라는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원들이 받쳐주지 못하며 88-86으로 아쉬운 2점 차 패배를 당하고 만다. 기세가 중요한 결승전 무대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하는 홈 2연전에서 1승 1패, 이어진 원정 경기에서도 1패를 기록하며 총합 1승 2패로 열세에 몰린 댈러스는 분위기가 더욱 어두워졌다. 이미 손가락 부상이 있던 노비츠키는 독감까지 걸리게 되면서 그야말로 '비상'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독감에 시달리는 노비츠키

 

야속하게도 4차전은 이틀만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고열 증세에 시달리고 있던 노비츠키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노비츠키는 21득점-11리바운드를 기록했고, 특히 4쿼터에만 10득점을 몰아치는 등 클러치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여기에 숀 매리언-제이슨 테리가 확실한 지원 사격으로 노비츠키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마이애미는 여전히 웨이드가 32득점을 올리며 맹활약했지만, 르브론 제임스가 단 8득점에 그치며 알 수 없는 부진에 빠지게 되고, 결국 3점 차로 댈러스에게 4차전을 내주게 된다.

 

많은 것이 걸린 5차전, 서로 리드를 가져갈 수 있는 기회였던 만큼 엎치락 뒤치락 하는 접전이 펼쳐졌고, 스코어는 100:100으로 동점인 상황까지 진행됐다. 이때 타고난 강심장이었던 노비츠키는 덩크를 터뜨리며 역전에 성공했고, 노비츠키-제이슨 테리-제이슨 키드의 연속 클러치 샷이 터지면서 5차전을 따냈다. 노비츠키는 양팀 최다 득점인 29득점을 기록했다.

 

기침 제스처를 하는 웨이드와 따라하는 르브론 제임스

 

이후 노비츠키가 독감으로 인해 고열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드웨인 웨이드와 르브론 제임스는 그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며 기침 제스처를 하는 등 노비츠키의 독감을 조롱하는 촌극을 벌인 것이 들통나고 만다. 이는 최전성기 선수들이 뭉쳐 거만한 모습을 보였던 마이애미를 향한 좋지 않은 여론에 불을 붓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모두가 댈러스의 우승을 바라는 상황이 되버리고 만다.

 

흐름과 분위기는 댈러스의 압도적인 우세였으나, 자신을 조롱한 사건을 접한 노비츠키는 유치한 애들 장난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6차전은 노비츠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댈러스의 승리였다. 제이슨 테리가 27득점으로 깜짝 활약하는 사이, 노비츠키는 21득점-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한결같은 활약으로 팀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프랜차이즈 첫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2010-11 NBA Final 우승, 댈러스 매버릭스

 

그리고 노비츠키는 파이널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파이널 MVP까지 수상하는 겹경사를 누렸고 원대한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왔던 독일 청년은,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Outro. 댈러스의 별이 되다.

이후 노비츠키의 댈러스 커리어는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팀의 터줏대감으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음에도 팀의 전력 강화를 위해 싼값에 재계약도 하는 등, 팀 친화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팀 성적과 별개로 본인의 마일스톤은 착실히 쌓아나갔는데, 2017년 3월 8일, LA 레이커스와의 맞대결에서 통산 30,000득점을 돌파하는 등 스코어러로서의 이정표를 또 하나 달성했다.

 

2019년에는 15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에 이름을 올리며 오랜 시간 리그에서 살아남는 저력을 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리고 2019년 4월 10일. 2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댈러스 매버릭스라는 한 팀에서 고고하게 빛났던 별은, 은퇴를 선언하며 영원한 별이 되었다.

 

디르크 노비츠키의 은퇴 연설은 감사와 자신의 여정에 대한 회고로 가득 차 있었으며, 댈러스 매버릭스 팬들과 가족에게 깊은 감동과 사랑을 전했다. 그는 은퇴 이후 댈러스 홈 구장 앞에 특유의 원 레그 페이더웨이 자세의 동상이 세워지며, 댈러스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선수로 남았다. 노비츠키의 페이더웨이 슛과 팀을 언더독에서 우승으로 이끈 리더십은 NBA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노비츠키의 전매특허, 학다리 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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