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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basketball/풋내기슛

[03 Draft] 뉴욕의 왕, 'Melo' 카멜로 앤서니

Carmelo Kyam Anthony

카멜로 키엄 앤서니

생년월일

1984년 5월 29일 / 뉴욕 브루클린 태생

출신학교

시라큐스 대학

신장

203cm

체중

108kg

포지션

스몰 포워드 (SF)

드래프트

2003 NBA Draft 1라운드 3순위

소속 팀

2003 ~ 2011 덴버 너기츠

2011 ~ 2017 뉴욕 닉스

2017 ~ 2018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2018 ~ 2019 휴스턴 로케츠

2019 시카고 불스

2019 ~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등 번호

No.15 (덴버), No.7 (뉴욕 ~ 휴스턴), No.00 (포틀랜드) 

주요 수상 내역

NBA 올스타 10회 (2007-2008, 2010-2017)

NBA 득점왕 1회 (2013)
All-NBA 세컨드 팀 2회 (2010, 2013)
All-NBA 써드 팀 4회 (2006-2007, 2009, 2012)
NBA All-Rookie 퍼스트 팀 1회 (2004)
NCAA Basketball 토너먼트 MOP (2003)
2016 리우 올림픽 금메달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4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Intro. 슛 폼이 아름다운 특급 득점머신, 카멜로 앤서니

03 Draft 시리즈 첫 번째 주자, 'Melo' 카멜로 앤서니. 2003년 NBA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NBA에 입성한다. 공격 능력만큼은 이미 NBA 레벨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 이유만으로 신인 때는 일각에선 르브론 제임스보다 카멜로 앤서니가 더 잘한다는 평가가 있었다.

 

폭발력과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갖춘 공격형 포워드로, 수비와 1:1로 붙는 아이솔레이션에 매우 능한 선수다. 순간적인 움직임이 빠르고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어 돌파 능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었으며 수비를 등지고 들어가는 포스트업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또한 슛 모션이 굉장히 간결하고 빠른 편에 속해 수비가 잠깐이라도 틈을 보이면 점프 슛을 꽂아 넣었다.

 

실제로 그의 경기를 보면 수비를 마주한 페이스업 상태에서 자잘한 페이크Fake와 잽 스텝Jab Step을 주면서 순식간에 치고 올라가 점프 슛을 터뜨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슈팅 비거리 또한 길어서 코트 어디서든 득점이 가능했다. 그의 전매특허인 잽 스텝 이후 점프 슛은 수비수가 알고도 못 막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으며, 미국 국가대표 시절 앤서니와 함께 뛰었던 블레이크 그리핀이 그에게 잽 스텝 점프 슛을 전수받을 정도였다.

 

앤서니와 함께 현역으로 활약했던 폴 피어스는 르브론 제임스와 코비 브라이언트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모두 상대해보았지만 가장 막기 힘들었던 선수로 카멜로 앤서니를 꼽았다. 르브론 제임스는 포스트업을 하게 하고 점프 슛을 쏘게 하면 그럭저럭 막을만했고, 코비 브라이언트는 힘으로 밀어붙이면 됐지만 앤서니는 코트 위 어디서든 득점이 가능하고, 힘도 매우 강해 어떤 방법으로든 막을 수 없었다고 평한다.

 

덴버-뉴욕 시절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지만, 골든스테이트와 스테판 커리가 NBA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리면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솔레이션에 특화되었던 선수였던 만큼 현대 농구보다 80~90년대 팀 에이스들의 아이솔레이션 농구가 득세했던 시절의 농구가 어울렸기 때문이다. 물론 체중관리 실패와 팀과의 불화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도 있다.

 

그러나 2019년 시카고에서 웨이버 공시로 방출된 이후, 1년 간의 공백을 지워내고 현 소속 팀 포틀랜드에서 회춘한 농구 실력을 뽐내며 마지막 커리어를 불태우고 있다.


Chapter 01. NCAA 무대를 평정하고 NBA 진출을 선언하다.

카멜로 앤서니가 태어난 뉴욕 브루클린 레드훅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안 좋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었다. 아버지를 암으로 일찍 떠나보내고 8살 때 볼티모어로 이사했으나, 볼티모어는 레드훅보다 더 위험한 곳이었다. 농구코트로 가는 길목도 위험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서니가 범죄자의 길로 빠져들지 않았던 것은 농구 덕분이었다. 승부욕이 강했던 앤서니는 자신보다 큰 사람들과 대결해서 이길 수 있었던 농구에 매료되어 다른 곳은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고교 시절에 이미 그의 적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메릴랜드, 시라큐스, 노스캐롤라이나 등 명문 대학들이 카멜로 앤서니라는 선수를 주목하고 있었으며, 전국 최고의 유망주로 자리 잡게 된다. 고교 졸업반인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고교 랭킹 1위에 올라있었고 앤서니는 졸업이 1년이나 남았음에도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에 대부분 앤서니가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NBA에 직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앤서니는 NBA 직행을 선택하지 않고 시라큐스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하며 예상을 뒤엎는다. 당시 시라큐스는 명문 대학이지만 2-3 지역 방어와 기본기만으로 승리하는 보수적인 농구를 펼치며 16강에만 머물렀고, NBA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라큐스 출신은 NBA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시선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앤서니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라큐스를 선택했고, 그 이유는 놀랍게도 뉴욕과 가까워서였다.

 

카멜로 앤서니가 설마...?

시라큐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짐 뵈임하임 감독의 눈에 들어 전술적인 자유를 부여받았고, 등에 날개를 단 앤서니는 압도적인 공격 능력을 앞세워 슈퍼 루키 돌풍을 일으키며 NCAA를 휩쓸어버린다. 만년 16강에 그치던 시라큐스 대학을 NCAA 결승까지 이끌며 27년 만에 우승까지 거머쥐게 했고, NCAA 토너먼트 MOP(MVP와 같다)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시라큐스 대학 시절 카멜로 앤서니.

 

앤서니가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와 비교할 때 위축되는 것은 NBA 파이널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것. 그러나 이들에게 없는 최고의 영예가 바로 NCAA 토너먼트 우승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뛴 대학 무대에서 우승까지 거머쥔 그에게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었기에 당연히 NBA 진출을 선언한다.


Chapter 02. 르브론 제임스와 영원한 'Frienemy'를 형성하다.

“하늘은 어찌하여 카멜로 앤서니를 낳고, 또 르브론 제임스를 낳았는가!”

 

NCAA 우승이라는 화려한 이력을 들고 NBA 무대를 노렸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앤서니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커리어 내내 경쟁하며 ¹프레너미를 형성하게 될, 르브론 제임스가 모두 독차지하였다. 1년 후배였던 제임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2순위는 세르비아의 장신 센터 다르코 밀리시치가 차지해버리고 만다.

 

결국 3순위까지 밀렸지만 앤서니는 덴버 너기츠에 지명되어 NBA에 입성하며 커리어를 시작한다. 승부욕이 강한 앤서니는 모르긴 몰라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데이비드 스턴 총재(좌)와 카멜로 앤서니(우)

 

"대학과 NBA는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지역 최고들과 맞붙었고,

대학에서는 전국 최고들과 만났습니다.

그런데 NBA에서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겨루게 되더군요."

 

- 카멜로 앤서니 인터뷰 中 -

 

슈퍼 루키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인 NBA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듯이 앤서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 경기 상대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경기 시작 2분 만에 파울 2개를 범하고 실책을 기록하는 등 프로의 쓴맛을 보게 된다. 경기에서 그를 마크했던 브루스 보웬은 '재능이 대단한 선수다. 경험을 쌓는다면 더 대단한 선수가 될 것이다' 라며 앤서니의 재능을 칭찬했다.

 

앤서니는 개막 첫 달부터 마지막 달까지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서부 지역 이 달의 신인 선수상을 쓸어 담았고, 평균 21득점을 기록하며 전체 신인 중 1위를 달린다. All-Rookie 퍼스트 팀은 당연히 따라왔지만 신인왕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1순위' 르브론 제임스가 신인왕을 가져가 버린다.

 

루키 시절, 카멜로 앤서니(좌)와 르브론 제임스(우)

이에 따른 여파였는지 2년차 시즌에 소위 말하는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리며 부침을 겪는다. 앤서니의 부진이 성적 부진으로 이어져 제프 브즈델릭 감독이 경질되었으나, 명장 조지 칼이 덴버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앤서니도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다.

 

조지 칼의 지도로 더욱 기량이 원숙해진 앤서니는 팀으로부터 5년 간 8천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제안받는다. 덴버는 앤서니를 중심으로 우승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팀의 홈구장인 펩시 센터에서 쉽게 지지 않으며 원정 팀의 악몽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전력이 강해졌지만 앤서니는 만족하지 못했다.

 

앤서니가 속한 서부 지역은 날이 갈수록 강해졌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 와중에도 앤서니는 2006-2007 시즌 전체 득점 1위를 달리며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했지만 뉴욕 닉스와의 경기 중 난투극에 가담하며 15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다.

 

평소 감독과의 불화와 코트 안팎으로 비친 악동 이미지는 올스타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가 3 시즌 만에 나란히 올스타 팬 투표를 통해 올스타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2007년 데이비드 스턴 총재에 의해 부상 선수 대체자로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된다.

 

이후 2008년부터는 올스타 주전 포워드 자리를 꿰찼고, 팀은 천시 빌럽스가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하면서 공ㆍ수 양면으로 조화를 이루며 전력이 상승하게 된다. 기세를 몰아 서부 지역 파이널 무대까지 오르지만, 코비 브라이언트-파우 가솔이 이끄는 LA 레이커스에게 패하며 파이널 진출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그러나 앤서니는 오히려 고무적이라며 기뻐했고, 차기 시즌을 기다린다.

 

오매불망 기다린 2009-2010 시즌. 앤서니는 개막전에서 30점을 터뜨렸고 두 번째 포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41점을 뽑아내면서 12승 5패로 시즌을 출발한다.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는 커리어 최다 득점인 50점을 기록하며 관중들로부터 MVP를 연호하게 만든다.

 

그렇게 부푼 기대감을 안고 임한 플레이오프는 조지 칼 감독이 병으로 쓰러지면서 공석이 된 감독의 자리를 메우지 못하며 유타 재즈에게 1라운드에서 패배하고 만다. 우승에 목말라있던 앤서니는 결국 덴버와 연장 계약을 택하지 않고 자유 계약을 앞두게 되면서 여러 팀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이미 르브론 제임스가 NBA를 뒤흔들며 마이애미로 이적한 터라, 르브론에 맞설 수 있는 선수 중 한 명인 앤서니가 연장 계약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팀들이 군침을 흘리기 충분했고, 언론은 앤서니를 가만 두지 않으면서 '멜로드라마Melo Drama'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게 된다. 매 주마다 언론에 의해 앤서니의 미래가 바뀌었고, 그렇게 떠들썩하게 앤서니의 이적을 점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월 22일, 마침내 트레이드가 성사되며 멜로드라마에 마침표가 찍히게 된다.


Chapter 03. 뉴욕에서 태어난 아이, 왕으로 귀환하다.

2011년 2월 23일, 뉴욕 닉스의 홈구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대형 전광판에는 앤서니를 환영하는 문구가 새겨진다. 앤서니는 팀 동료 천시 빌럽스 외 3명과 함께 뉴욕에 입성하게 된다. 뉴욕은 앤서니가 오기 전까지 무려 9시즌이나 부진의 늪에 허덕였고, 5할 승률도 달성하지 못하며 패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앤서니 영입 이후 탄력을 받은 뉴욕 닉스는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보스턴 셀틱스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앤서니는 고향에 돌아왔다는 만족감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뉴욕에서 차기 시즌을 준비한다.

 

앤서니의 희망과 달리 뉴욕에서 맞이한 두 번째 시즌도 덴버에서처럼 부진을 겪게 된다. 당시 팀 로스터가 상당히 엉망이어서 앤서니가 볼 배급까지 담당해야 했고 본연의 플레이 스타일과 달라지자 더욱 부진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하버드 출신 대만계 미국인인 제레미 린이 '린새니티'를 일으키며 팀을 상승세로 바꿔놓는다.

 

그러나 이를 달갑지 않게 여겼던 앤서니는 린과 불화를 일으켰고, 급기야 당시 뉴욕 감독이었던 마이크 댄토니와도 불화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결국 댄토니가 사임하면서 갈등이 봉합된 팀은 5연승을 달렸지만 앤서니는 여전히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제레미 린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앤서니가 본래의 기량을 되찾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앤서니의 지긋지긋한 프레너미, 르브론 제임스(6번)

그러나 '또'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에 막혀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나마 앤서니의 분전으로 당시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크리스 보쉬로 이어지는 최강의 Big 3을 구성한 마이애미를 상대로 1승을 거뒀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제이슨 키드(5번) - 카멜로 앤서니(7번) - 타이슨 챈들러 (6번)

2012-2013 시즌은 타이슨 챈들러, 제이슨 키드 등과 함께 모처럼 순조로운 시즌을 맞이한다. 뉴욕은 앤서니 합류 이후 가장 좋은 성적(54승 28패)을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앤서니도 개인적인 영광이 뒤따르게 된다. 무려 10년 만에 득점왕을 차지한 것이다.

 

그렇게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패트릭 유잉 시대 이후 처음으로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 로이 히버트를 앞세운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앤서니가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2라운드에서 무릎을 꿇고 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2012-2013 시즌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암흑기 시절 뉴욕의 모습이 도래한다. 앤서니 개인적으로는 샬럿 밥캐츠 전에서 62점을 퍼부으면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한 경기 최다 득점을 갈아치우는 등 선전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는 통산 누적득점 19,000점을 달성하며 최연소 선수 부문 5위에 오르기도 한다(역대 최연소는 르브론 제임스).

 

앤서니와 달리 팀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치면서 그가 NBA에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앤서니가 뉴욕과 연장 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하면서 멜로드라마 시즌2가 시작된다. 그러나 뉴욕 닉스의 사장 필 잭슨은 팀의 중추인 앤서니를 설득한다. 잭슨은 노쇠한 타이슨 챈들러와 레이먼드 펠튼을 트레이드시키며 앤서니에게 의지를 보였고 앤서니는 결국 뉴욕과 연장 계약을 택하면서 멜로드라마를 조기 종영한다.

 

재계약을 마치고 절치부심한 앤서니는 다이어트에 돌입하며 더 빠른 공격을 가져가기 위해 체중 감량을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 달리 올스타전 이후 무릎 부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고, 팀 성적은 또다시 곤두박질치고 만다. 하지만 전화위복으로 대형 신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가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팀은 다시 상승세에 들어서게 된다.

 

2017년에는 조금씩 삐꺽거렸던 필 잭슨과의 관계가 뒤틀리면서 필 잭슨은 공개적으로 앤서니의 트레이드를 하겠다고 폭탄선언한다(멜로드라마 시즌3). 그러나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던 앤서니는 우승 프리미엄이 없는 도시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맞불을 놓는다. 더군다나 거액을 수령하고 있는 앤서니의 연봉을 감당할 팀이 없었다는 것도 트레이드를 어렵게 한 원인이었다.

 

필 잭슨이 팀의 주축인 앤서니에 이어 앤서니를 지지하던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에게도 부적절한 발언을 해버리면서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게 되고 뉴욕과 왕의 동행은 끝을 바라보게 된다.


Chapter 04. 승리를 원했던 남자, 저니맨이 되다.

앤서니가 뉴욕에 남아있어도 분위기는 호전될 가능성이 없었기에 팀은 그를 트레이드시켰고, 앤서니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ESPN 파워 랭킹에서 한 경기도 뛰지 않았던 신인 론조 볼보다도 낮은 랭킹으로 평가받은 앤서니가 다시 살아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려대로 오클라호마에서 앤서니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 앤서니는 이제까지 해왔던 본연의 스타일을 버리고 캐치 앤 슈터로 거듭나며 다시 상승세에 오르나 싶었지만 후반기에 체력이 떨어져 부진하게 된다. 2017년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 운동선수라면 서서히 하락세에 접어들 나이였지만, 같은 나이였던 르브론 제임스는 여전히 정상급 레벨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어 비교를 당하며 온갖 비판과 조롱을 받게 된다.

 

이미 ²샐러리 캡 초과로 사치세를 내고 있던 오클라호마는 앤서니의 연봉이 부담이 되어 애틀랜타 호크스로 트레이드하였고, 애틀랜타는 앤서니의 연봉만 부담하고 그를 방출시켜버린다. 리그 최정상급 득점 기계가 방출당하는 수모까지 겪은 셈이다.

 

앤서니는 돌고 돌아 절친한 크리스 폴이 몸을 담고 있는 휴스턴 로케츠로 향했다. 프리 시즌 몰라볼 정도로 홀쭉해진 앤서니의 훈련 영상이 올라오며 팬들은 기대감을 품었다. 뉴욕 시절 자기 관리에 실패하며 후덕해진 모습을 보고 '도넛 맨'이라는 조롱을 받았던 그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크리스 폴과 제임스 하든은 패스라면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이고, 슛만큼은 여전히 건재한 앤서니가 그들의 패스를 받아 손쉽게 득점을 올리는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휴스턴에서 시작된 앤서니의 시즌은 첫 경기부터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게 20점 차로 대패하며 패배의 원흉으로 몰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휴스턴은 지난 시즌 서부 지역 파이널에서 골든스테이트를 탈락 위기에 몰아넣었을 정도의 강팀이었고, 팀의 주축이었던 제임스 하든과 크리스 폴이 건재했기 때문에 뉴올리언스를 쉽게 제압할 것이라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애초에 노쇠한 앤서니의 수비력이 수비 스페셜리스트인 트레버 아리자의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휴스턴에서 10경기만을 치르고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만다. 휴스턴의 레전드 중 한 명인 트레이시 맥그레디는 "앤서니는 더 추해지기 전에 은퇴해야 한다"라고 발언하면서 앤서니의 위상이 얼마나 낮아졌는지 실감하게 했다.

 

결국 앤서니는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시카고에서 그를 웨이버 공시로 방출하며 '무직(돈 많은 백수)'가 되며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게 된다.


Chapter 05. 1년 간의 공백... 그의 행선지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로

시카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NBA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된 카멜로 앤서니는 뉴욕 닉스의 관중석에서 카메라에 잡혔고, 여전히 뉴욕 팬들은 '(구) 뉴욕의 왕'을 향해 환호를 보내자 앤서니는 이에 화답한다. 브루클린 네츠의 홈구장인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진행된 2018-2019 정규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브루클린 네츠 vs 마이애미 히트 전. 절친인 드웨인 웨이드의 은퇴 경기에서 ³바나나 보트 패밀리의 일원으로 웨이드와 기념 촬영을 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카멜로 앤서니 (좌측 끝) - 드웨인 웨이드 (좌) - 크리스 폴 (우) - 르브론 제임스 (우측 끝)

세계 최정상 리그인 NBA에서 선수 황혼기에 떠나 1년 간의 공백이 있는 그가 NBA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더군다나 여러 차례 옮겨다닌 팀에서 퇴보한 기량을 보여줬던 그였기에 그를 원하는 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멜로드라마의 주연답게 반전이 일어난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벤치에서의 역할도 받아들이겠다고 여러 곳에서 인터뷰했던 앤서니였고, 주전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지지만 벤치 멤버로는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였다. 물론 포틀랜드의 로스터가 부상으로 포워드 진에 구멍이 나면서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앤서니를 영입했을 공산이 컸다.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는 카멜로 앤서니

포틀랜드에서 맞이한 첫 경기도 늘 그랬듯이 패배로 시작했지만, 포틀랜드의 원투펀치 데미안 릴라드-CJ 맥컬럼이 부진에 빠지면서 소년가장 본능(극한 직업)이 발동하며 팀을 이끌기 시작한다. 물론 전성기 시절의 앤서니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앤서니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팀에 헌신한다.

 

느려진 스피드 때문에 스몰 포워드 수비를 할 수 없게 되자 파워 포워드로 경기에 나서며 궂은 일을 자처한다. 그리고 릴라드-맥컬럼과 함께 팀의 주요 옵션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급기야 2014년 이후 약 6년 만에 서부 지역 이 주의 선수로 선정되며 베테랑의 귀환을 알린다.

 

신인 시절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빛나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 때문에 많이 밀려났지만, 이제는 노장으로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는 카멜로 앤서니도 서서히 커리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다.


Outro. NBA 역사상 누구보다 찬란한 국제 경력을 쌓았던 'Melo' 카멜로 앤서니

NBA 무대에서 우승 경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르브론 제임스를 넘어 마이클 조던조차도 없는 경력이 있다. 바로 2008 베이징 올림픽-2012 런던 올림픽-2016 리우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무려 금메달 쓰리-핏이다. 심지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대표팀에 승선하였고, 아쉽게 동메달에 그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조별 예선에서 나이지리아를 맞이해 14분 동안 무려 37점(!)을 폭격하며 국제무대에 괴랄한 득점 능력을 과시했고, 미국 농구 올림픽 대표팀 1경기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린다.

 

'Team USA' 카멜로 앤서니

사실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NBA와 달리 국제무대는 NBA 선수들에겐 부담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치열했던 시즌을 마무리하고 회복을 취하며 차기 시즌을 준비해 더욱 기량을 펼쳐야 하는데 부상이라도 당하면 입지가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치열해지는 리그 경쟁력도 한몫하고 있었다.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대표팀 명단에 오르지만 개인 사정으로 사양하고 휴식을 이유로 명단에서 자진 하차한다. 국제무대는 그들에게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19 FIBA 농구 월드컵에서 미국 대표팀 코치진은 역대 최고로 꾸려졌지만, 슈퍼스타들이 합류하지 않으며 선수진은 역대 최약체로 평가를 받았다.

 

이에 카멜로 앤서니는 당시 무직(백수)였음에도 대표팀에서 출전을 희망하였을 정도로 애국심이 투철했다. 물론 경기를 뛰지 못하고 소속 팀도 없었던 그였기에 그의 희망은 묻혔지만. 졸전을 펼치던 미국은 결국 8강에서 프랑스를 만나 탈락하고 만다.

 

이제 국제무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겠지만, Team USA 유니폼을 입고 헌신했던 카멜로 앤서니의 모습은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주석]

1) 프레너미 Frienemy : 친구와 적의 특성을 함께 갖는 사람.

2) 샐러리 캡 : 팀 별로 연봉 상한선을 두어 선수들의 과도한 몸값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

3) 바나나 보트 패밀리: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카멜로 앤서니-크리스 폴은 비시즌에도 바나나 보트를 타며 어울려서 생긴 별칭

 

[참조 서적]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농구스타 22인 - 손대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