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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emorandum/개발자 패스

웹 퍼블리셔가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기까지

2016년부터 지금까지 웹 퍼블리셔로 일해왔고, 올해 3월부터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지금 와서는 퍼블리셔나 프론트엔드 개발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력 면에서는 아직 갭이 크다는 것은 느끼고 있다. 퍼블리셔로는 이제 막 초급 티를 벗어난 정도, 프론트엔드 개발자로는 신입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더 열심히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써본다.


4번. 첫 회사에 입사 후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 이직한 횟수다.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5개의 회사에 다닌 셈이다. 이때 당시 나의 회사 입사 기준은 두 가지였다. 업무 분위기가 자유로울 것, 성장할 수 있을 것.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회사를 찾아다닌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조업에서 근무하면서 딱딱한 분위기와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경험했던 터라 다시는 그런 곳에서 일하기 싫었다.


그리고 4번의 이직을 거치는 동안 업무 분위기가 딱딱하거나 야근을 많이 하는 회사는 가지 않았다. 물론 지금 회사도 그렇고 첫 번째 회사를 제외하고는 야근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닌데, 비상식적인 스케줄보다는 내 실력 부족으로 인한 야근이었다.


두 회사를 합친 근무 기간, 3개월


2016년 3월 1일. 가구와 비품도 없었고 사무실도 막 계약을 끝낸 참이었던, 그야말로 '새로운'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했다. 그렇게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처음 발을 내딛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우선 자체 쇼핑몰 제작이라는 업무가 있었기 때문에 포토샵을 켜고 사이트 시안을 디자인하기 시작했고 시안 확정 후 코딩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웹 퍼블리셔'로 입사했기 때문에 디자인도 병행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웹(Web)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기껏해야 HTML과 CSS, jQuery 기초가 전부였던 내게 쇼핑몰 제작은 엄청난 난이도였다. 쇼핑몰 제작 시에 사용하는 솔루션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검색 끝에 그누보드 기반의 영카트 쇼핑몰 솔루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솔루션을 기반으로 대표님의 요구에 맞춰 제작하는 것은 내 실력에 해낼 수 없는 난이도였다. 버거운 정도가 아니라 해결할 방법조차 찾지 못했던 나는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입사 한 달 만에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회사로 들어간 시기는 그해 여름이었다. 두 번째 취업 전에 부족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웹 사이트 개발의 기본적인 프로세스인 기획 - 디자인 - 웹 퍼블리싱 - 프론트 개발 - 백엔드 개발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회사는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있는 곳으로 취업했다. 일이 많아서 야근할 때가 많았지만 팀장님한테 배울 것도 많았고, 디자이너분도 열려있는 마인드를 가진 분이라 허심탄회하게 디자이너-개발자 간의 이슈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업장을 확장하기 위해 이사를 하면서 회사가 성장세에 들어섰지만, 문제는 대표님의 인격이 딱히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사할 때도 주말에 출근하고 연속되는 야근에 과로 + 요로결석이 겹치는 바람에 입원했었는데, 퇴원 후 대표님으로부터 '어영부영 할 거면 나가라'라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퇴사하겠다고 얘기하고 출근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회사에서 근무한 기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자 나는 이 길이 맞지 않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회사는 내 실력이 부족했던 것도 있었지만 명확한 비전이 없었고, 업무 범위가 내가 해낼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난 것들이었기 때문에 불가항력이었던 셈 쳤다. 두 번째 회사는 업무가 많긴 했지만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소모품 취급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은 대표가 싫어서 퇴사했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니 한 번 더 도전해보기로 했고, 그렇게 또 다른 기회가 내게 다가왔다.


일하는 마인드의 초석을 만들어준 세 번째 회사


절박했기 때문일까. 세 번째 회사는 출근 거리만 무려 1시간 4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이전 두 회사와 달리 실력 있는 디자이너, 개발자와 일하면서 조금씩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약간 아마추어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내게 '프로 의식'을 심어준 회사였다.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태도,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대한 책임감 등 자유를 부여하는 만큼 책임감을 가지라는 게 회사의 요구였다. 입사 후 두 달 동안 정말 많이 혼났다. 덕분에 그럴 때마다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고쳐나갈 수 있었다.


또한 개발자로서 실력의 한계를 많이 느꼈었다. 디자이너의 요구사항은 잘 처리했지만, 개발자가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기본적인 이론이나 개념이 부족했던 것도 있었지만 논리적인 사고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지금도 힘들다) 그렇게 일은 일대로 풀리지 않고 과장님이 사적인 부분까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멘탈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나의 자존감부터 시작해서 일하고자 하는 의욕까지 모두 사라지고 출근이 점점 힘겨워지면서 그렇게 세 번째 회사도 퇴사했다.


다사다난했던 경험을 무기 삼아 네 번째 회사로!


굉장히 일들이 많았지만 세 군데 회사에 다닌 기간을 합치면 놀랍게도 1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네 번째 회사에 입사했는데 이곳은 쇼핑몰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만약 이때 경험을 가지고 첫 번째 회사를 갔다면, 나는 어렵지 않게 쇼핑몰을 제작했을 것이다.


카페24를 주로 사용했지만 내가 이전 회사에서 워드프레스를 이용하여 쇼핑몰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자 워드프레스 기반으로도 홈페이지를 제작하였다. 이때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을 인정받은 기분이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실력 있는 개발자가 있었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자체 개발이 필요한 기능은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사수였던 대리님도 굉장히 실력이 있으셨고, 성격도 좋으셨던 분이라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특히 자기 것을 주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몇몇 보았는데, 이분은 아낌없이 본인의 노하우를 공개해주셨다. 웹 퍼블리셔로 성장도 많이 했던 시기지만 잇따른 사람들의 퇴사로 인해 프로젝트를 시작부터 끝까지 경험해보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크게 볼 수 있었다. 프로젝트 일정, 금액에 따른 난이도 조율, 진행하면서 클라이언트와 지속적인 연락, 디자이너와 협업 등 많은 것들을 얻었던 시기였다.


이 회사에서 1년 넘게 일하면서 연봉도 적지 않은 폭으로 상승했고 회사에서 대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지만,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바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할 수 있는가였다. 웹 퍼블리셔를 프론트엔드 범주 안에 넣어두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일하면서 퍼블리셔는 프론트에 속하는 직군인 것 같았기에 더욱 분야를 넓히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올해 연초에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한번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신입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다


스카우트 개념의 제안은 아니었다. 사실 내가 이전 회사에 다니고 있는 동안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사님이 입사를 권하셨지만, 회사에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길에 막히자 연차를 내고 이사님을 찾아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님께서 '인턴'으로 입사를 제안하셨다.


현재 회사가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많았던 터라 두 달 동안 인턴처럼 일하면서 무겁지 않은 프로젝트 하나를 맡고 남는 시간은 공부해서 좋은 회사로 가라는 것이 이사님의 취지였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지금 회사에 남아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여기서 프론트엔드 개발에 사용되는 기술 스택을 쌓으면서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프론트엔드 프레임워크인 Angular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았고, 다음 프로젝트는 Vue로 진행할 것 같다. 다만 이사님은 이런 것들보다 자바스크립트와 네트워크,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 대해 더 공부하라고 늘 말씀하고 계신다.


웹 퍼블리셔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일했고,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선 신입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배움의 자세를 잊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