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달이다. 약 반년 동안 공부하고 만들어진 포트폴리오로 처음 회사에 취업했기 때문이다. 그 해 2월 중순에 합정 메세나폴리스 파스쿠찌 카페에서 면접을 봤다. 당시 나를 면접 봤던 분은 신생 회사를 설립할 준비를 하셨는데 인테리어 제품을 자체 제작하여 판매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마포 쪽에 사무실을 임대할 예정이고, 이제 회사를 만드는 거라서 사원보다는 동업자 정신으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그때 당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에 휩싸여 있던 터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우면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일하겠다고 승낙했다.
여기서 첫 번째 실수를 저질렀다. 우선 나는 웹 퍼블리셔라는 직군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었고, 경험조차 전무했는데, 이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았다! 웹과 관련된 전권을 위임받는다는 것은 그만한 경험이 필요한 법인데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자만했다.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다
입사 확정 후 첫날, 마포 사무실로 출근했다. 출근했더니 텅 빈 사무실에 가구 박스와 컴퓨터 몇 대가 나를 맞이했다. 대표님께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난 후 나는 박스를 열고 가구를 조립하고 컴퓨터를 설치하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분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여기가 거북이 회사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니, 회사 제품 디자인을 담당할 제품 디자이너였다. 그렇게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각자 사용할 컴퓨터를 연결하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도착하셨다. 인터넷은 아마 내일쯤 될 거라고 하시면서 필요한 프로그램들은 요청하면 구매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첫 주간은 사무실에 필요한 비품과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 보냈다.
그리고 대표님 본인도 모르는 것이 많다며 야간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후 5시에 퇴근하시곤 했는데, 이때는 '대표님이 정말 열심히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모습을 본받고자 했었다.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실수였다. 사업은 이미 모든 계획과 검증이 끝난 상태에서 시작해도 잘될지 모르는 것인데, 대표님은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지식도 없던 상태였던 것이다. 거기에 나는 내가 맡은 업무도 잘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저 '열정'이라는 단어 하나로 '할 수 있다!'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대표님은 어떤 아이디어든 가감 없이 내길 바랐다. 좋은 문화였다. 단,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였다는 걸 빼면. 아이디어를 낼 수 없었다. 뭘 알아야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으니까. 처음엔 대표님도 이해해주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내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업무를 대하는 방식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웹 디자인을 하다가 홈페이지에 사용할 회사 로고가 없어서 보고 드렸더니, 하루 동안 로고를 만들라고 하셨다. 나는 회사의 정체성을 담은 로고를 하루 만에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하루로는 부족하다고 했지만, 로고 만드는 게 뭐 어렵냐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대표님 지시였기에 하루 만에 로고를 만들긴 했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었다. 영문 폰트에 철자 하나만 살짝 비틀어 논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즉, 깊은 생각이 묻어나지 않고 시간에 쫓겨 만들어진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로고를 맘에 들어하셨고, 어쨌든 회사 로고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후에도 충분한 고민과 의견 취합이 필요한 내용들을 이야기하면, 회의가 필요 없는 내용이라고 말씀하시며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나는 이 회사가 내게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경험을 쌓기 위해서 어느 정도 체계가 있는 회사에 입사하거나 실력 있는 사수를 만났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를 결정하다
새로운 사원 두 명이 추가로 입사하면서 조금씩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사이트 디자인과 퍼블리싱은 어느정도 나왔는데, 당시 DB와 서버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디자인과 퍼블리싱은 입사 후 2주 동안 어느 정도 진행되었으나 데이터를 가져오고 서버에 올리는 방법을 전혀 모르니 진척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쇼핑몰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어떤 화면이 필요한지,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급기야 대표님은 한 달이 다 돼가는데 사이트가 아직도 안 나오냐며 압박을 주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내 능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닫고 대표님께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대표님은 자기도 결과물을 봐야 하는데 보지 못해서 빨리 만들라고 압박 준 것이라고 하면서 퇴사를 만류했다. 하지만 내 능력 부족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제야 대표님은 내게 손을 내미시며 나중에 시간이 흘러 같이 일할 수 있으면 다시 일해보자고 하셨다.
퇴사 후 당시 회사 사람들을 다시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취업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해 주었고 직종 전환 후 처음으로 일했던 만큼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첫 회사를 신중하게 선택하라.
내가 별로 얻은 것이 없는 첫 회사에 대한 경험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자신의 기량을 낮출 필욘 없지만 그렇다고 과대평가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내가 저지른 두 가지 실수는 다음과 같다.
1. 스스로 과한 자신감을 가졌고,
2. 회사가 가진 비전을 냉정하게 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회사에 가고 싶다는 목표보다 우선 취업하면 좋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회사에 취업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퇴사했다.
'어떤 회사를 가고 싶다'라는 목표가 너무 크다고 느껴진다면 최소한 '어떤 일을 하는 회사'에 가야겠다는 목표는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첫출발이 중요한 법이다.
나는 이때 첫 스타트를 잘못 끊으면서 이후 다사다난한 커리어를 시작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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